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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 09시. 통한의 안중근 육혈포 총탄, 이또히로부미(伊藤博文) 심장에 명중아침을 여는 창/ 수필가 서호련

 

 

 

 

 

 

 

“내가 죽거든 하얼빈 공원에 묻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 땅으로 이장하라.”

 

<아래 이또 사살 상보(祥報)는 빨치산 45사단장 남원출신 황의지씨가 소시 적에 그의 아버지가 세운 사립학교의 민족주의 선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그의 자서전에 쓴 것이다>

이또가 하얼빈 역에 도착하기 직전의 날 10월 26일, 안중근이 읊은 시 한 수다.

<원수 너를 만났도다./ 너를 한번 만나려고 수륙으로 기만리를/ 천신만고 거듭하여 가시성을 더듬었다./ 혹은 윤선 혹은 화차 노국 청국 방황하다가 너를 오늘 만났구나.../ 너 말고도 흉적들은/ 오늘부터 시작하여 한 놈 두 놈 보는 대로/ 남의나라 빼앗은 놈 내손으로 죽이리라.>

안중근은 미제 브로우닝 육혈포 권총을 가슴에 품고 하얼빈 역으로 나갔다. 정거장 경내는 삼엄한 경계로 물샐 틈이 없었다. 시계가 막 정각 9시를 가리켰다. 역내로는 조선침략의 원흉 이또히로부미와 그 수행원들을 실은 특별열차가 서서히 들어오고 있었다. 이 때 서둘러 삼엄한 경비망을 헤치고 역내로 들어간 안중근은 조금도 서슴지 않고 유창한 일본말로, “나는 일본 신문기자요.” 한마디 말을 내던지고는 그냥 앞으로 나갔다. 새까만 슈바(방한용 모피외투)를 입고 말쑥한 차림새와 태연자약한 태도와 대담한 행동에 의심을 하지 않고, 경찰들도 두어 마디 투덜대다가 그만 물러서고 말았다.

안중근이 플랫품에 뛰어올라갔을 때 이또는 벌써 각국 외교관들과 고위인사들의 영접을 받으며 첫발을 내딛었다. 안중근은 엄숙하게 늘어서 있는 대열 뒤에 바싹 다가섰다. 환영하는 음악이 울리고 축포가 터져 올랐다. 거드름을 피우면서 열차에서 내린 이또는 역내에 정렬한 러시아의 장병들을 제법 위엄 있게 사열하고는 몇 발자국 걸어갈 때였다. 이또를 보자마자 증오심으로 불타오르는 안중근은 권총을 꺼내들고 비호처럼 앞으로 뛰어나갔다.

경비하는 헌병들이 미쳐 막을 사이도 없었다. 안중근은 이또를 향하여 여섯 발을 연속적으로 쏘았다. 백발백중의 명사수 안중근이 쏜 탄환은 빗나가는 것 없이 이또의 몸에 날아갔다. 첫 탄환은 가슴팍을 맞추었고, 둘째 탄환은 갈빗대를 맞추었고, 셋째 탄환은 배를 맞추었다. 세발을 맞은 이또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나머지 세발은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타이찌로森泰二郞, 만철이사滿鐵理事 다나카 세이타로田中淸太郞 등을 맞추었다. 이리하여 하얼빈 역내는 흉적의 더러운 피로 물들었으며,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때 안중근은 득의양양한 어조로 온 역내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소리쳤다. “나는 조선 사람이다. 나를 체포하려는 자는 나를 잡아라.” 안중근의 호령은 일본 헌병들을 압도했다. 그리고 그는 가슴에 고이 간직했던 조선의 태극기를 높이 치켜들고 만세를 불렀다. “꼬레아 우라 (코레아 후라-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뒤 러시아 헌병에 잡혔다.

112년 전 오늘,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반. 일본제국의 전 총리, 조선 합병의 원흉, 이또히로부미는 이렇게 사살 당했던 것이다.

그는 체포되는 순간에도 태연자약하였다. 안중근은 바로 여순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리고 1910년 2월 24일 침략자의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서거 직전 영제에게 유언하여 말하길, “내가 죽거든 뼈를 하얼빈 공원에 묻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 땅으로 이장하라. 나는 천국에 가더라도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진력하겠노라. 너희들은 나를 대신하여 동포들과 동심 일력 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공을 세우고 위업을 이룩하라. 조선독립의 그 날이 오면 나의 영혼이나마 구천에서 춤추며 조선만세를 소리 높이 외치련다. 나는 조선독립을 위하여 죽고 동양평화를 위하여 죽는다. 죽음에 어찌 유감이 있으랴.”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백의민족의 상징인 한복을 단정하게 입고 조용히 동쪽으로 머리를 숙여 조국과 민족의 광복과 평화를 위해 기도 한 후 형단刑斷에 올라가 순국하셨다. 안중근의 유언대로 유해를 찾아 하루속히 고국으로 봉환해야 하련만 110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 묻힌 곳을 찾을 길 없으니 하늘도 어찌 이리 무심 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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