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千: 일천 천 載: 실을·해 재 一: 한 일 遇: 만날 우
천년(千載)에 한 번 만날 수 있는 기회란 뜻으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기회를 이르는 말.
[동의어] 천재일시(千載一時), 천재일회(千載一會), 천세일시(千歲一時).
[유사어] 맹귀부(우)목[盲龜浮(遇)木]
동진(東晉)의 학자(學者)로서 동양 태수(東陽 太守)를 역임한 원굉(袁宏)은 여러 문집(文集)에 시문(詩文) 300여 편을 남겼는데, 특히 유명한 것은 문선(文選)에 수록된 ‘삼국 명신서찬(三國名臣序撰)’이다. 이것은 삼국지(三國志)에 실려 있는 건국 명신 20명에 대한 행장기(行狀記)인데, 그중 위(魏)나라의 순문약(荀文若)을 찬양한 글에서 원굉은 이렇게 쓰고 있다.
“대저 백락(伯樂)을 만나지 못하면, 천 년이 지나도 천리마(驥) 한 필을 찾아내지 못한다(夫末遇伯樂 則千載無一驥)”고 적고, 현군과 명신의 만남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렇게 쓰고 있다.
말(馬)에 대하여 안목이 높은 말(馬)의 명인 백락을 만나지 못한다면, 천년이 지나도 한 마리의 천리마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은, 어진 신하가 명군(名君)을 만나는 것이 러렵다는 것과 통한다.
대저 만 년의 한 번 기회는 이 세상의 통하는 길이며
천 년에 한 번 좋은 기회를 만나는 것은 현인()과
지혜 있는 사람의 아름다운 만남이다.
이와 같은 기회를 누구나 기뻐하지 않고는 못 견디니,
기회를 잃으면 누구나 어찌 능히 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 순욱(荀彧 자는 文若): 처음에 원소에게 의탁하였으나 후에 원소가 끝내 큰일을 이루지 못할 것을 헤아려 조조에게 몸을 맡겼다. 조조는 그를 깊이 신임하였는데, 그를 일러서 ‘나의 장자방이다.’ 라고 하였다. 조조에게 도읍을 허도로 옮기고 헌제(獻帝: 후한의 마지막 황제)를 그곳으로 모실 것을 적극 건의하여 천자(天子)를 끼고 제후들을 호령(號令)할 유리한 지위를 얻게 하였다.
조조는 대장군(大將軍)의 벼슬을 받은 후 그를 시중, 상서령(尙書令)으로 임명하고 군사와 국정의 중요한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조조가 여포를 섬멸한 뒤 원소와 서로 대치하였는데, 그는 원소와 그를 따르는 부하들에 대해서 정밀한 분석을 하여 조조에게 강한 신임을 심어 주었다. 건안 17년(212년), 동소가 조조에게 위공의 벼슬을 받을 것을 주장하였는데, 순욱이 반대함으로써 조조의 불만을 샀다. 후에 조조를 따라 손권을 정벌하러 갔으나 병을 핑계로 수춘에 남게 되었다. 조조는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찬합을 보냈는데 그 안에는 아무런 음식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는 조조의 뜻을 알아차리고 독약을 먹고 죽었다.
백락: 주(周)나라 시대에 준마(駿馬)를 잘 가려냈다는 명언.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저작권자 © np남원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