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무란 뜻은 ‘당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사안을 임금께 상소 한다’는 뜻이다.>
남원에서 춘향제를 빼 놓으면 혼을 빼 놓는 거와 같다. 남원의 혼은 춘향제이다. 춘향제의 혼은 춘향 영정이다. 그런데 춘향제가 2년째 영정 없이 제향을 지냈다니, 지난 2년간은 남원의 혼도 춘향의 혼도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91년 춘향제 역사에 영정 없이 제향을 지낸 일이 없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춘향제 때 놀고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춘향의 얼을 새기는 것이 춘향제의 근본 뜻이다. 2020년 남원시는 정부의 친일청산 의지와 일부 요구를 받아들여 친일화가 김은호가 그린 영정을 철거했다. 그 후 지금까지 사당은 비어있고 91년 춘향제 역사에 단 한번 도 없었던, 영정 없는 춘향제향을 2년이나 지낸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첫째, 영정철거가 진정 온 시민들의 뜻 이었는가?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시민의 뜻을 수렴했단 말인가? 철거가 절대다수 시민의 뜻이라고 해도, 그 시기와 방법이 담보되어야 한다. 대체할 영정을 마련해 놓고, 철거즉시 대체영정을 봉안해야 하지 않는가. 아무런 대안 없이 무엇이 그리 급한 일이라고 덜컥 철거부터 해놓고 2년간이나 영정 없는 춘향제를 치루고, 시민들을 편가르며 혼란으로 몰아넣은 것인가.
<최초춘향영정복위추진시민연대>는 최초의 영정을 봉안해야 하는 이유로, 그 초상은 춘향제와 함께 탄생한 최초의 영정으로 1930년 당시 시대의 요구를 온전히 표현한 특별한 작품이며, 남원과 진주 민족주의 운동가들의 염원이 담겨져 있는 민족적 표상이다. 또한 영정은 작품성보다 역사성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최초 춘향제 때 봉안한 영정을 수장고에 그대로 묵힐 것이 아니라 다시 끄집어내어 지금 비어 있는 사당에 대신 봉안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철거를 주장한 남원정신연구회와 춘향영정 고증연구 용역 측에서는 최초의 영정이 그간 대두되었던 진주출신 강주수 작품이 아닌 걸로 확인됐다면서 철거 당위성을 여전히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정을 그린 자가 강주수가 되었건 또 그 누구가 되었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영정이 가지고 있는 시대성과 역사성이 중요하다. 미상의 화가가 그렸더라도 첫 번째 초상은 암울한 일제강점기 하에서 민족의식을 가진 최초의 춘향제에 바쳤던 민족 얼이란 상징성을 가지고 있느니 만큼 그 영정을 채택하는 것도 틀린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도 아니라면 영정을 다시 공모해야 하는데, 공모한 초상화도 시민다수가 절대 찬성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면 그냥 영정 없이 춘향제를 한 없이 지내자는 말인가? 아니면 지금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는 최초의 영정을 다시 봉안하던지, 둘 중의 하나이다. 남원시는 속히 결단을 내려 영혼 없는 남원시란 오명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차제에 춘향제향에 관계해서 거론해야 할 개탄스러운 일이 하나있다. 1931년 남원권번 기생들의 수장이었던 최봉선은 당시 항일단체인 청년동맹과 신간회 간부였던 이현순과 전국의 예기권번 기생들과 함께 춘향사당을 건립하고 영정을 유치하여 춘향제를 시작하였다. 이때 최봉순은 춘향제사답을 자비로 매입하고 그 소출로 제사경비를 충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6.25 전란 때는 영정을 싸들고 진주로 피난하여 영정을 화마로부터 지킨 분이다. 그런데 춘향제향을 관리하는 모 단체는, 그 제사답을 자기 단체의 모 임원에게 팔아 넘겼다는 것이다. 그러니 춘향정신을 선양한다는 단체가 오히려 춘향의 얼을 훼손 하는 민낯을 들어 낸 것이다. 지하에 있는 춘향과 이도령도 통탄 할 만 하다. 대명천지에 간도 크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가 고 남원 원로들의 원성이 높다. 어떻게 그 제사답을 복원하여 최봉선의 애향심을 기릴 방법은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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