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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춘향영정, 진주출신 강주수 작품 아닌 걸로 확인돼

남원정신연구회 등 확인 작업 통해 밝혀져

춘향영정 고증연구용역서도 연관성 없다 판정

 

그동안 춘향사당에 최초로 걸렸던 춘향영정이 진주출신 강주수 작품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걸로 확인됐다.

남원역사연구회와 김양오 사회활동가 등에 따르면 강주수는 진주출신으로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1920년 민족자본으로 설립 운영된 일신재단 상무이사를 역임했으며, 진주권번을 세운 사람 중 한명으로 조사됐다.

나중에는 촉석루를 복원하는데 앞장섰으며 인쇄업과 영남춘추를 발행하며 교육사업과 사회운동을 했던 인물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 그림을 그리는 화가하고는 연관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 셈이다.

 

남원시가 원광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춘향영정 고증 연구용역에서도 진주에서 활동하던 강주수라는 화가는 확인할 수 없다고 기술했다.

단지 강주수가 진주권번의 감사와 이사를 맡고 권번업을 한 것으로 보아 권번을 중심으로 최봉선과 연결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최초의 춘향영정과 관련한 역사를 추적해온 김양오씨도 “1920년대 형평사 운동(진주에서 백정들이 신분타파를 외치며 일으킨 신분해방운동)을 일으킨 신현수와 가까웠던 강주수가 당시 진양인쇄소를 운영했는데, 1927년 남원에 형평사 지회가 생기면서 전단지 2000여장이 뿌려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강주수가 형평사 운동 때문에 남원을 오갔고, 1931년 춘향영정을 남원으로 가져왔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최초의 춘향영정은 누가 그렸을까.

김양오씨 등은 우형 임경수를 지목하고 있다.

임경수는 경북 예천 출생으로 지운영(1852∼1935)에게 그림을 배웠으며 산수화와 인물화에 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춘향영정 연구용역에서는 김은호와 관련한 1977년 중앙일보 기사에 ‘그때까지만 해도 춘향사당에는 내 그림을 자주 위조해서 팔아먹던 우형이 그린 페인트 초상화가 걸려있었다’라는 자료를 기술해 놓고 있다.

김양오씨 등도 일제강점기 때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활동했던 임경수가 1905년 우리나라 최초로 상해에서 유화를 배워왔고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워 고종의 모습을 최초로 촬영 했던 그의 스승 지운영의 영향을 받아 재야에서 작가로 활동하며 춘향영정을 그렸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다.

유화물감에 대해 잘 모르던 당시에는 유화를 페인트라 표현할 수 있고, 최초의 춘향영정에 유화물감이 섞여 있다는 점을 중요 포인트로 잡고 있다.

최초 춘향영정을 그린 작가가 누구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에 대한 역사적 연관성과 일부 자료,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춘향정신과 문화의 계승발전을 위해 좀 더 세밀한 조사와 고증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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