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11년 조선 후기 간행된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별집 제4권 사전전고 여러 사당 편에 보면 「관왕묘는 남원부의 성 서문 밖에 있는데, 선조 기해년 사이에 명나라 도독 유정(劉綎)이 창건한 것으로서 묘정비(廟庭碑)가 있다. 숙종 42년에 신상을 고쳐 세웠는데, 모두 중국의 제도를 그대로 모방하고, 명나라의 총부중군 이신방(李新芳)과 총부천총 장표(蔣表), 총부천부(摠府千夫) 모승선(毛承先)을 배향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숙종 37년에 명을 내려 여러 도에 있는 관왕묘의 제사를 선무사(宣武祠)의 예에 따라 경칩과 상강에 향과 축문을 내려 보내 본도에서 제사를 행하도록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관운장을 배향하고 제사지내기 시작한 것은 1598년(선조 31) 숭례문 밖에 남관왕묘를 건립하고 중국 삼한시대 촉한의 장수였던 관우를 제향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남원 관왕묘는 1년 뒤인 1599년 유정이 창건하고 1716년(숙종 42)에 남원 현감 박내정에 의해 동문 성안으로 중건하였다가 이후 1741년(영조 17)에 남원부사 허린에 의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숙종실록 숙종 42년 윤 3월 기사에 「남원현에 사당을 세워 임진년에 전사한 이신방, 모승선, 장표 등 세 사람을 제사하고 오흥업을 칠충신 정기원 등의 사우에 추향하라」고 명하였다.
이때 관왕묘에 명나라 장수 세 사람을 배향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별도의 사당을 관왕묘 내에 세워 유정을 배향하고 이후 1781년에는 정조 임금이가 탄보묘(誕報廟)를 친히 써서 감서에게 보내 현액 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명나라군은 관우의 신령이 나타나 신병으로써 싸움을 도와주었다는 명분으로 설치된 관왕묘에 제향 된 명나라 장수는 부총병 양원을 따라 정유재란 남원성 싸움에서 중군 이신방은 동문에서, 천총 장표는 남문에서, 모승선은 서문에 배치되어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장수들이다. 충렬사에 배향되지 못하고 이제는 향도 사르지 않는 남원 관왕묘에 배향된 명나라 장수 3인의 이름을 기억하고 추도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저작권자 © np남원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