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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훈 남원시 총무국장

 

“시민에게 좀 더 많은 봉사 하지 못해 아쉬워”

“공무원을 한자로 표현하면 공복(公僕), 영어로 표현하면 civil servant라고 합니다. 아마 국민과 시민에게 언제나 낮은 자세로 봉사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제 공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시간이 되고 보니, 시민에게 좀 더 많은 봉사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지금 당장 드는 소회는 그래서 아쉬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시절엔 왜 그리 ‘운동’이 들어간 행사가 많은지

황의훈 국장이 공직을 선택하게 된 것은 아버지의 권유가 컸다고 한다.

당시 세대에서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던 까닭에 그 뿐만 아니라 형과 동생도 공직에 입문해 형은 교육부에서 서기관으로 퇴직했고, 동생은 고용노동부에서 사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산동면 등구에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1979년 12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남원군 남원읍사무소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초임 때인 1979년 말과 80년대 초는 지금으로 따지면 구석기 시대 쯤으로 표현된다.

“제가 처음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환경이 지금처럼 좋지는 않았습니다. 문서 작성을 위한 컴퓨터, 타자기도 없었고, 열심히 펜으로 공문서 기안해서 인쇄할 일이 있으면 일명 ‘가리방’이라 불리던 줄판으로 회의 자료를 직접 준비해야 했습니다.”

황 국장은 가리방 작업을 하다 옷에 잉크가 묻어나면 아무리 옷을 빨아도 지워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옷을 버려야했다며 참 대책 없는 시절이었다고 했다.

또 그 시절에는 퇴비증산운동, 새마을 운동, 식량증산운동 등 왜 그리 ‘운동’이 들어간 행사가 많았는지, 휴일도 반납하고 밤낮없이 시민들과 함께 목표 달성을 위해 뛰어다녀 지금은 꿈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스라이 먼날 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2009년 3월에 지방행정사무관으로 승진하고 서울사무소장, 홍보전산과장, 감사실장, 기획실장 등을 거쳐 2016년 7월 서기관(4급)이 됐다. 처음에는 의회사무국장으로 발령받았지만 1년 6개월 뒤 지금의 총무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부·국회 오가며 현안사업 국비확보 성과 기억에 남아

그가 공직생활을 하며 기억에 남는 일로는 기획실에 근무할 당시 ‘거점공공형 산모보건의료센터’ 공모사업을 유치해 남원과 임실, 순창을 비롯해 지리산권 인근 시군의 산모들에게 의료적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일과 서울사무소장으로 있을 때 ‘남원애향장학숙’을 건립한 일 등을 꼽았다.

또 남원시 현안사업인 지리산친환경전기열차, 지리산육아종합지원센터, 승화원화장로 조성 등을 위해 중앙부처와 국회를 수차례 방문하고 설득해서 국비를 확보했던 것을 큰 보람으로 여겼다.

그는 기억나는 사람 중에 최훈 전 부시장(현 행정안전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단장(1급))을 칭찬했다.

“이 분은 기획력이 뛰어나고 업무에 대한 열정도 남달랐는데, 성품마저 온화해 많은 공무원 들의 귀감이 됐다”며 “저도 같이 근무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저절로 존경한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소회했다.

최 단장은 2008년 1월부터 2010년 1월까지 2년 동안 남원시 부시장으로 근무할 때 기획계장으로 있던 황 국장과 함께 기재부와 행정안전부를 설득해 전국 최초로 ‘지리산 관광개발조합’을 유치하는 공로를 세우기도 했다.

 

 

공무원은 원칙과 기준 세워 일관성 유지해야

황 국장은 후배공무원들에게 전하는 말을 통해 ‘자신만의 명확한 원칙’을 강조했다.

공무원이 업무를 맡아 진행함에 있어 흔들림 없는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지만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위에서 아무리 흔들려 하고, 그릇된 압력을 행사한다 해도 자신만의 원칙을 꼭 지킬 수 있는 공무원이 되길 바란다는 말도 함께 덧붙였다.

황 국장은 2남 1녀를 두고 있는데 장남은 육종연구원, 며느리는 박사학위를 취득해 삼성전자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고, 장녀는 회사원, 차녀는 대학에 재학 중이다.

아내는 같은 공무원으로 현재 산동면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황 국장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먼저 건강을 화두 삼았다.

나이 들면 건강이 최고 다며, 그동안의 공직생활이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왔던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가족과 주변을 살피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더 넓은 안목으로 주위를 살펴보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에 그는 “40여년의 세월 속에 좋은 일도 많았지만 함께 근무하면서 일에 대한 열정이 앞서 본의 아니게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 준 일이 없었나 하는 걱정이 든다”며 “더 나은 남원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의욕이 앞서 그랬나보다 하고 넓은 아랑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고 인사말을 가름했다.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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