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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를 호국사찰이라 부르는 까닭

 

남원시 산내면 소재지에서 함양군 마천면으로 방면으로 람천을 따라 약 1km 정도 가며 오른쪽 들 가운데 실상사가 둥지를 틀고 있다. 실상사는 828년 신라 흥덕왕 때 창건한 구산선문 최초의 사찰로 유명하다.

실상사에는 오래전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는 말이 있다. ‘실상사가 흥하면 일본이 쇠퇴하고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쇠퇴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때 일본 사람들이 실상사를 찾아 이곳의 변화상을 탐문하기도 했다.

실상사를 호국사찰로 부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먼저 풍수적 해석으로 보면 위도상 지리산 천왕봉과 일본 후지산이 일직 선상에 있다. 이 때문에 백두대간의 정기가 천왕봉에 뭉쳐 바다건너 일본 후지산으로 흘러가는 형국으로 맥을 끊기 위한 비보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4천 근이나 되는 철불을 주조하고 또 다른 불상과 다르게 대좌를 설치하지 않고 땅 위에 철불을 안치하였는데 지기의 흐름을 끊기 위한 방비로 해석하고 있다. 실상사가 다른 사찰과 다르게 평야지에 창건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또 하나는 보광전 동종 종신부에 새겨진 일본 열도이다.

스님들이 종을 칠 때는 당목으로 일본 열도의 중심부를 두드렸다. 두드림을 통해 일본이 안정되지 못하도록 기원하고 일본이 저지른 지난 역사의 반성과 사죄가 없음을 꾸짖는 것일 수도 있다.

당목이 두드린 일본 열도 부분은 닳고 뭉개져 희미해져 버렸지만 당목이 닿지 않은 북해도나 구주지방의 형태는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처럼 일본 열도를 동종에 새긴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쇠퇴한다는 신념에 따라 일본이 흥하지 못하도록 날마다 그 심장부를 때려왔다.

일본은 실상사가 흥하면 일본이 쇠퇴한다는 전설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실상사를 압박하였는데 그 일례로 일제 강점기에 동종을 치지 못하도록 엄중히 단속하고 지도가 새겨진 부분에 딱지를 붙여 무딘 소리가 나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8·15광복을 맞아 일본인이 붙여 놓은 딱지를 떼어낸 후 다시 종을 치니 본래의 맑은 소리를 냈었다고 한다.

부처의 공덕으로 나라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고자 건립하거나 그 역할을 하는 사찰을 우리는 호국사찰이라고 한다. 실상사는 갖는 호국의 의미는 처음 터를 잡으면서부터 기원하고 있다.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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