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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명창 이화중선 <6>

공회당 화장실에 피를 한 바가지나 쏟아놓고 혼절해있는 이화중선을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동생 이중선이었다. 추월만정 한 대목을 청중들의 가슴이 저리도록 불러놓고 무대를 내려온 언니가 말 한마디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간 것을 보았는데, 어사와 춘향모 상봉대목을 공연하고 돌아와보니, 대기실에 없는 것이었다.

‘언니가 일얼 당했구나. 죽을지경이 아니면 소리 한 대목인들 양보헐 언니가 아닌디...어째사 쓸고이.’

이중선이 눈물을 글썽이며 화장실로 가니 구린내보다 피비린내가 먼저 코를 후비고 들어왔다.

“흐메, 언니. 이것이 시방 먼 일이다요?”

이중선이 울음을 터뜨리며 어깨를 흔들자 얼굴이며 손바닥에 피철갑을 한 이화중선이 눈을 뜨고 올려다 보았다.

“암소리 말그라. 단원들이 놀랠라.”

“그걸 말이라고 허요. 임단장 욕심에 어떻게든 언니를 무대에 세울라고 헐 것인디.”

“무대에 슬 수 있으면 서야제. 소리꾼이 무대에서 소리허다가 죽으면 장헌 죽음이제. 행복헌 죽음이제.”

“그래도 나넌 말얼 해야 쓰겄소. 언니가 폐병이 도져 소리럴 못헌깨, 나허고 먼첨 조선으로 돌아가겄다고 말얼 혀야 쓰겄소.”

“그리만 혀보그라. 내가 너럴 동생으로 안 여길란다.”

이화중선이 모진 소리를 했다.

“알겄소. 언니의 쇠고집얼 누가 당헌다요? 암소리도 안 헐 것인깨, 정 못 참겄으면 언니가 먼첨 안되겄다고, 무대에서 소리럴 못허겄다고 말허씨요.”

이중선이 수건으로 이화중선의 얼굴이며 입가를 찬찬히 닦아주었다. 두 자매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기실로 돌아오자 임상문이 잔뜩 걱정스런 얼굴로 다가왔다.

“화중선이, 몸이 많이 안 좋은가? 춘향모를 중선이 한테 맽기다니?”

“아까는 무대에서 쓰러질 것 같아 중선이헌테 맽겼는디, 쫌 쉬고 난깨 관찮소.”

이화중선이 억지로 조금 웃으며 임상문을 안심 시켰다.

“다행이구만. 일본의 어느 도시를 가건 조선동포는 많은깨, 기왕 온 김에 한바꾸 삥 돌고 가자고. 다행이 조선땅과는 달라 공연허가도 잘 나오고 조선말로 공연얼 헌다고 시비도 안 허고, 이것해라, 저것해라, 선동허라고 강요도 안 헌깨.”

임상문의 말에 이중선이 한 마디 나서려는 걸 이화중선이 옆구리를 쿡 찔러 말렸다.

“왜놈덜도 사람인디, 즈그놈덜이 끌어다가 죽을 고생얼 허는 사람덜얼 위로헌다고 공연허는디, 헐 말이 있겄소?”

“내가 어떻게던 저녁에는 화중선이 밥 좀 제대로 멕일라고 조선 사람이 허는 식당에다 말얼 해놓았구만. 김치도 구해놓고, 생선찌개도 짭쪼롬허니 끓여놓으라고 말이여.”

“고맙구만요, 임단장님. 밥값은 내가 낼라요. 우리 단원들 배 안곯게 걸게걸게 채려내놓라고 허씨요.”

“아, 참말로 레코드사에서 받은 돈얼 다 쓸참이여?”

“그까짓 돈이 먼 소용이다요?”

“내가 미안헌깨 글제. 암튼지 기운얼 채리소.”

밥값은 이 쪽에서 내겠다는 말이 반가웠는지 임상문이 웃음띤 낯빛으로 돌아갔다.

“언니, 참말로 어쩔라고 그러시오? 일본땅에서 죽을라고 그러시오?”

“걱정허지 말그라. 사람의 목심언 하늘에 달렸다고 안 허드냐? 설마 너헌테 죽은 송장 떠메고 현해탄얼 건느라고 허겄냐?”

이화중선의 목소리가 조금 컸던 모양이었다. 청중들의 삼창에 적벽가 한 대목을 더 부르고 돌아온 임방울이 큰 소리로 물었다.

“송장언 먼 송장이다요? 입살이 보살이라고 바다 건너 왜놈땅에 와서 멋땜시 죽는 타령이다요?”

“중선이 야가 멀쩡헌 나럴 두고 자꼬만 걱정얼 해싸서 지청구럴 주느라고 헌 소리구만. 방울이 동생언 맴얼 쓰지 말게.”

“흐기사, 어사와 춘향모 상봉대목언 중선이랑 해도 되겄든디요. 누님도 들었지라우? 청중들이 춘향모가 원래 누님 몫이라는 걸 몰랐을테지만, 암소리도 않고 잘만 들어줍디다. 얼씨구 절씨구, 필요헌 대목에서는 신명나는 추임새도 넣고라우.”

“방울이 오라버님도 별 말씸얼 다허시오. 지 소리가 어찌 언니의 소리를 따라가겄소? 하늘과 땅차이지요.”

이중선이 오랜만의 칭찬이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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