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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항일운동사 증보판 발간 후기소설가 윤영근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 묻혀버릴까 안타까워,

선열들의 구국정신 현대에 새롭게 조명해보자 결심”

 

이번에 새로 발간된 남원항일운동사 증보판은 ‘3.1운동 1백주년’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백주년’, 그리고 광복 74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사업이 아닐 수 없다.

이 엄청난 역사의 기록이 출간되기까지는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남원출신 향토작가인 나와 최원식(필명 최정주)은 한참 젊은 나이에, 세상에 지극히 하찮은 일이 터무니없이 과장되어 세인들의 입에서 오르내린가 하면, 여러 사람들이 꼭 알고 기억해야하는 중요한 사실들이 묻혀버리는 안타까움을 일깨우기 위해 선열들의 구국정신을 현대에 새롭게 조명해 보자는 결심에서 40여전 젊음을 바탕으로 남원항일운동사의 발굴에 손을 대게 된 것이다.

그때가 1974년부터 10여 년 동안 우리는 우선 전국 각지에 독립유공자 후손들로부터 자료를 수집하였고, 남원3.1만세운동 당시 선봉에서 만세를 독려하다가 총상을 입고 생존하셨던 정한익옹(당시 93세), 주동을 하시다가 체포되어 2년간의 옥고를 치루고 생존하신 이성기옹(당시 94세) 두 분의 조언에 의해 광복회, 전국신문사, 형무소, 자료보관원, 도서관에서 당시의 판결문, 검찰심문조서, 신문기사 등에서 실마리를 얻어 남원사건이 눈에 띄면 띄는 대로 자료를 수집했다.

 

 

어떤 경우에는 의병의 행적을 쫓다가 전라도에서 충청도로, 경상도로 생전에 발 한번 디뎌보지 못한 곳에서 수중에 여비가 떨어져 고생한 일도 있었다.

그렇게 분주한 세월을 몇 년간 헤집고 다닐 때에 최원식과 나는 하루세끼 밥을 먹어 본 일이 거의 없었다. 경비도 경비거니와 식사를 하며 노닥거릴 시간이 없어서였다.

어느날은 간첩신고를 받고 경찰서에서 하루저녁 숙박비 없이 신세를 진일도 있었다.

자료조사를 위해 어느 면사무소에 갔을 때 내가 찾고자하는 사람이 당시에 사상적으로 수배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의 호적이며 제적등본을 확인할 때에 나 역시 사상적으로 의심을 받게 되어 간첩신고를 받게 된 것이다.

 

자료정리 하다 어떤 대목에서는 울분이 올라 손이 떨리기도

80년대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휴지조각 같은 종이조각이지만, 그동안 수집했던 최원식과 나에게는 소중한 자료들을 한 장 한 장 풀고 엮어가며 기록으로 정리했다. 이러한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보니 어떤 대목에서는 울분이 나서 오기 같은 것이 가슴에 치밀어 올라 손이 떨리기도 했다.

당시 일제는 무단정치로 강압통치를 하면서 조선사람들을 처벌하기위해 특별법으로 소위 ‘치안유지법위반’이니 ‘대정8년제령’이니 하는 특별법을 만들어 조선사람들에게 10년이나 20년 또는 종신형을 내리기도 했고, 이미 일본에서도 잔인한 형벌이라고 해서 폐지되었던 태형(笞刑) 제도를 우리나라에서 부활시켜 매를 때리는 형벌을 가하기도 했다.

의병들에게는 강도, 살인, 강간 같은 파렴치범을 씌워 종신형이나 사형, 교수형 등에 처했다. 당시의 항일투사들의 판결문을 번역하다가 보면 이러한 수치스러운 죄명으로 조선사람들을 처벌하기위한 악랄한 수단을 썼다.

기록으로 남기기에 곤란한 부분이 있었다. 1930년대에 항일운동단체 중에서 당시 사회주의 소위 공산당조직(고려공산청년회)을 통한 활동과 학생운동과 신간회, 청년동맹의 활동으로 일제에 옥고를 치룬 이두용, 양판권, 윤규섭 같은 분들은 해방 후 월북을 하였거나, 행방불명이 되었으며, 그 직계후손이 없어서 또는 공산당에서 전향한 사실이 없다고 하여 포상자 대상에서 삭제되어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어느 집안 족보 때문에 비분강개한 일이 있었다. 어떤 집안에서 족보를 제시하며, 자기집안 어른이 1919년 4월 4일 북시장만세운동 당시 선봉대에 서서 만세를 지휘하다가 일본헌병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절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최원식과 내가 수집했던 모든 자료 어디에서도 그 사람의 기록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 후손을 대동하고 당시 북시장만세운동의 주동자로 생존하신 이성기옹(96세)을 찾아가서 그 의문의 족보를 보여드렸더니, 노구의 불편한 몸을 벌떡 일으키시며 ‘이것이 무슨 소리냐?’ ‘그 놈이 살아 있느냐?’

이성기옹의 설명에 의하면 그 사람은 일본헌병대 사환(심부름꾼)이었다고 한다. 그날 만세운동 현장인 북시장터에서 헌병대에 있다는 기만을 부리면서 만세운동을 방해하여, 현장에서 주동자들에게 돌팔매를 맞고 쓰려져 수많은 군중이 짓밟아 버렸는데 그놈이 살아 있을리가 없다고 열을 올렸다.

그 뒤에도 그 후손은 이성기옹은 고령으로 곧 돌아가실 것이며 나와 최원식만 입을 닫아버리면 친일파가 애국지사가 되는 것은 뻔한 일이라며, 돈으로 최원식과 나를 회유하려했다. 최원식과 나는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소설로써 만천하에 고발하기로 하고 「당신의 조상은 떳떳합니까?」라는 제목을 달아 거짓 족보 사실을 조목조목 씹어서 예술문예지「예술계」에 실어버리고 그 글을 그 집안에 우송하여 주었더니 그 뒤로는 잠잠해졌으나 아직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40여년의 노력 새 증보판에 고스란히 담아

이러한 별의별 일을 감당하면서 10여년의 각고의 세월 끝에 최원식과 나는 1985년 봄날, 미흡하지만 남원항일운동사 첫판을 내 놓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항일운동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10여 년 동안 헤집고 다녔던 광복회, 보훈처, 국사편찬위원회, 자료보관소, 신문사 등을 들락거렸고, 막연하지만 소문을 쫒아서 지금은 거의 파기되고 없지만 면사무소에 보관되어있는 수형인명부, 호적등본, 제적등본을 근간으로 이미 발간된 「한국독립운동사」, 「의병사」,「독립운동자료집」등을 대조해가며 다시 1백여 분의 독립지사와 의병을 조사하여 1999년 가을에 재판 「남원항일운동사」를 세상에 내 놓았다.

그리고 자료수집을 멈추지 않고 다시 찾아낸 남원출신 독립지사, 의병 330여 분 가운데 활동자료가 충분하신 160여 분의 구국행적을 기록하여 2019년 8월 15일 증보판 남원항일운동사를 발간하게 됐다.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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